얼마전, 드래곤볼 에볼루션이라는 영화가 개봉했다.
이는 일본의 만화 ‘드래곤볼’이 원작이다.
소위 발전된 문화라고 불리는 서구문물은
동양사회에서는 동경의 대상이다.
물론 그렇게 된 이유에는 여러가지가 있을 것이고,
확실하게 우리 것보다 좋은 ‘무언가’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이런 영화의 개봉으로 인해
(물론 과거에도 이런 시도는 있었지만 새삼스럽게)
우리만 마냥 좋아서 매달리는 상황이 아니라는 것을 느꼈다.
그치만 얘네는 역시 표현하는 스케일이 다르다.
전문가도 아닌 일반인들이 장난치며 놀기 위해 만든 동영상 치고는
상당한 수작이라고 생각한다.
1. 사람은 누구나 다
- 세상을 공포로 물들인 연쇄살인범 혹은
그를 체포해 사회의 근심걱정을 줄이는 경찰 모두 -
어떠한 폭력성에 사로잡혀있다.
그것은 여러 본능과 감정에 기초해있는데
일반적으로 우리들은 가정에서의 교육이나 사회에서의 교육으로
그런 본능을 절제해가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경제적’으로 살기 위해서는 혼자 살 수 없고,
그렇기 때문에 법과 도덕이나 인륜같은 테두리 안에서
가슴이 아닌 머리로 행동함으로써
서로에게 믿음을 어느정도 심어주는 것이다.
그렇기때문에 인간은 인간이라고 할 수 있으며,
그나마 적은 사망률로, 그나마 이렇게라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믿고 싶다.
2. 아래의 영상은 고등학교 시절 친구의 소개로 잠깐 보았던
Happy Tree Friends라는 미국의 플래쉬 애니메이션이다.
귀여운 모습의 캐릭터들이 보여주는 그로테스크한 영상물로써
그들은 이것을 TV로 방영했는데, 이런 폭력적인 것들을
어떤 이유로 방영했는지는 알 수 없다.
아마도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처럼 순박한 모습의 캐릭터를 만들어
시청자들 개개인의 내면에 있는 폭력성을,
아니면 제작진 스스로의 내면의 폭력성을
귀엽고도 끔찍하게 드러냈는지도 모르겠다.
홍채인식이라는 영화나 소설을 통해 우리에게 친숙해진 기술이다.
그래서일까 나는 홍채인식이라는 기술이 굉장히 대단하다거나 하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러나 내가 홍채인식 시스템인 ‘TRUE EYE ACCESS’를 포스팅한 이유는
이것의 사용용도에 있다.
영상에서 개발자는 이 시스템의 용도가 출입통제 및 근태관리용이라고 설명했는데
이것은 참으로 두려운 일 아닌가!!
네임카드를 이용해서 직원이 현재 사내 어디에 있는지 실시간으로 파악하는
S기업의 비인간적인 시스템에 이것마저 더해진다면
회사야말로 진정한 창살없는 감옥이 되고 말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기업에서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통제받지 않으면 태만해지고 마는 인간의 습성에
슬픈 생각마저 들어버렸다.
그러니까 여러분, 우리 모두 지각하지 맙시다!!:)
닌텐도의 신제품 DSi가 출시된다고 한다.
기존의 제품과 별반 달라 보이지는 않지만,
나름 흥미로운, 시간 죽이기 좋은, 별 쓸모없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유하고픈 욕망을 불러 일으키는
몇 가지 기능이 추가돼 눈길을 끌고 있다.
그렇다고 해도 이미 시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몇 가지 기술을
한데 합쳐놓아 마치 공부하려고 산 전공서적을 졸리면 베개로도
쓸 수 있고, 라면 먹을 때는 냄비 받침으로도 쓸 수 있듯이
뭐랄까 조금 자질구레해졌달까 하는 느낌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이런 생각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DSi를 소유하고 싶은
마음이 불타오르는게 나도 어쩔수 없는 대기업의, 마케팅의,
이 사회의 희생양이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해주었다.
뭐 골치아픈 얘기는 신경쓰지 말고
일단은 하나씩 가져다가 플레이해보면
나도 모르게 DSi에 깊이 빠져버리지 않을까??
국가기관에 의한 도청.
공상과학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일이 우리에게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그저 뛰어난 상상력을 지닌 사람들이 만들어낸 터무니없는
음모론에 불과한 것일까?
어찌되었건 이런 일이 발생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사람들이 상상할수 있게 된 것만으로도
우리는 대단히 두렵고도 놀라운 세상에 살고 있다.
이 제품을 이용하면 조금 더 편리하게 양치를 할 수 있을듯 싶다.
물론 양치를 마친 후에 얼마나 깨끗이 씻겼는지 얼마나 산뜻한 느낌인지
동영상만 보고 확인해볼 바는 없지만, 한 가지 드는 생각은 사람은 누구나
귀찮을 것을 싫어한다는 것과 사람이 생각하는 범위는 대체로 비슷하기
때문에 성공하는 사람은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라 실행하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저러한 행동마저 하기 싫은 사람들을 위해
더 나은 형태의 ‘무언가’가 나오는 것도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이 동영상을 보고 뜬금없이 떠오른 두 가지 생각.
※혹시라도 이 글을 읽고자 하는 분이 계시다면 감상에 앞서
실질적으로 글자체가 이 동영상과는 큰 관련이 없다는 점을 알아주셨으면 한다.
1. 부자연스러움의 자연스러움
2. 미래에 우리가 흔히 즐길 발전된 게임상
-1. 문명의 발전을 옹호하는 한 사람의 입장으로써, 기술이 진보한다는 것은
우리에게 더욱 편리한 삶을 보장해준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상당히
긍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잠시 인본적인(?)
측면에서 바라보면 현재 인간은 자연이 아닌 문명속에서 부자연스럽게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나는 그것은 지나간 삶을 돌아봤을 때 할 수 있는
이야기 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부자연스럽다 혹은 자연스럽다는 것은
한 가지로 정해져있는 것이 아니다. 지금 우리 문명의 삶이 계속된다면
이것 자체가 당연시되어 먼 훗날(어쩌면 지금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
가 당장 그렇게 여기고 있을지 모르지만)에는 자연의 삶이 부자연스러운
삶이 되고, 문명의 삶이 자연스러운 삶이 될 것이다. 조깅을 하고 싶으면
집 밖으로 나서서 바람을 맞으며 달리는 대신 컴퓨터 앞에 서서 모니터에
들어선 나무와 숲을 바라보며 달리는게 당연시 되듯이.
-2. 여기에서 보는 동영상에서는 완벽하지 않지만, 모두가 생각하고 있는 가장
발전된 형태의 게임은 오감을 만족시킬 수 있는 게임이 아닐까 생각한다.
물론 그것을 이루기 위한 현실적인 어려움들은 그 분야의 전문가들이 해결해
줄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다만 오감만족형 게임을 개발했을 때의 문제점
역시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도덕성의 문제와 고통의 정도 이 두 가지를 들고
싶다. 첫째로 도덕성의 문제는 인간을 가장 자극시키는 폭력과 섹스에 관한
이야기이다. 현재 발매된 수 많은 게임은 보통 이 두가지를 주제로 하고 있다.
대중가요 가사에 사랑 이야기가 빠질 수 없듯, 게임을 이루기 위해 폭력과
섹스는 빠질 수 없는 단골메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감만족이 아닌 단순한
형태의 게임을 통해서도 그 문제성이 크게 드러나고 있는 현재의 상황인데
실제로 게임의 세계로 들어가서 폭력을 휘두르고 살인을 하고 섹스를 한다면
그것은 정말로 엄청난 문제를 야기할 것이다. 둘째로 내가 폭력을 휘두를 수
있다면 반대로 내가 그것을 당할 수도 있다는 얘기인데, 그럴 경우 고통의
정도는 얼마가 될 것이냐 하는 것도 의문이다. 실제와 같은 충격을 받는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 이야기일 뿐만 아니라 게임을 통해서 대리
만족을 얻으려는 사람들이 그런 아픔과 고통까지 감내하면서 그런 오감만족형
게임을 즐길 것인지 의문이라는 얘기다. 물론 나는 이렇게 민감한 부분에 대한
해답을 이야기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 이유 중에서 가장 큰 부분은 물론 해답을
찾지 못했다는 점이다.